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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명] ‘악마같은 삶’이 아니다 - ‘평범한’ 강간문화, 텔레그램 성착취 반드시 끝내자
작성일자 2020-03-26
조회수 6


[성명] ‘악마같은 삶’이 아니다

‘평범한’ 강간문화, 텔레그램 성착취 반드시 끝내자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계정 관리자 ‘박사’ 조씨가 검거되었다. 3월 23일 한 언론사가 조씨의 인적사항과 얼굴을 공개한 이후 언론은 앞다투어 조씨의 행적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고, 25일 신상공개가 결정된 조씨가 했던 발언도 지속적으로 기사화되고 있다.

 

사이버성폭력 관련 청원들은 매번 압도적인 청원동의수를 기록해왔다.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청와대 청원 동의자 수는 260만명을 돌파했고,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청원의 경우에도 188만명을 넘어섰다. 누적 26만여명의 회원들에 대한 전원 처벌 및 신상공개 촉구 청원은 ‘n번방’을 비롯한 텔레그램 성착취 계정 운영자 몇몇의 문제가 아닌 성폭력을 동조하고 서로 독려하며 가해 수위를 높여온 참여자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가능케 한 남성중심적 성문화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자신이 소비했거나 방관했던 강간문화를 되돌아보지 않는 ‘의로운’ 관전자들 또한 존재한다. ‘나는 n번방에 들어간 적이 없으며 n번방은 괴물같은 일부의 소행일 뿐’이라며 악마화하는 태도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현실의 성폭력을 외면하는 태도이다. 또한 계정 운영자의 발언과 신상정보가 불필요할만큼 온갖 뉴스와 타임라인을 도배하는 상황은 여성들의 문제의식과는 동떨어져있다.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동료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을 일삼는 학교, 회사, 기자 등등의 남성 단톡방이 n번방과 무관한가.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모의를 청년기의 일화쯤으로 치부하고, 교사에 대한 성적판타지를 버젓이 출판한 저자들을 옹호하는 태도는 과연 n번방과 얼마나 다른가.

 

“내 딸이 n번방 같은 곳에는 못가도록 가르칠 것이다”, “가해자 처벌과는 별개로 ‘음란한’ 피해자에게도 처벌이 필요하다”며 ‘진짜 성폭력 피해자’와 ‘가짜 성폭력 피해자’를 나누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태도는 n번방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조씨의 평범함은 곧 성폭력의 평범성이다. ‘n번방’, ‘박사방’과 같은 텔레그램 성착취는 피해 여성들의 신상정보를 볼모로 삼아 성폭력을 공모하고 실행한 익명의 참여자 수십만명이 함께 만들었다. 사진 영상 매체를 활용한 여성 폭력은 ‘빨간 마후라’ 사건, 소라넷, 일간베스트, 웹하드, 텀블러, 웰컴투비디오, 텔레그램, 라인, 디스코드 등 시대에 따라 매체를 달리하며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사이버성폭력은 자신이 얼마나 여성을 겁박하고 예속시킬 수 있는지, 성폭력적인 언행을 할 수 있는지를 서로 과시하고 즐기는 강간문화의 자장 안에 있다.

 

조씨에 대한 신상공개와 보도, 이에 대한 정보공유가 관전평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n번방’이라는 사건에 공모자, 공모를 방관한 자들 역시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박사방’, ‘n번방’ 이라는 공간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현장이며, 이 현장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하는 분노와 비판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선함과 정의로움은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다”, “나는 n번방 이용자 아니다”라는 선긋기나 억울함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스스로의 책임과 해야 할 몫을 생각하지 않는 정의는 정의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요구한다.

 

하나.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여성혐오와 강간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소라넷’ 폐쇄, 유명연예인의 단톡방 공개,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검거 그리고 지금의 텔레그램 ‘n번방’사건까지 사이버성폭력 사안이 이슈화 될 때 마다 해당 플랫폼에 있던 불법촬영물은 급격한 속도로 재유포되었다. 각종 플랫폼에서 ‘수사 피하는 방법’, ‘다운로드와 유포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해자 특정이 어려우니 많이 퍼트리자’라는 내용이 팁으로 공유되어왔다. 성매매가 합법화되지 않아 ‘성욕해소’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범행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조씨는 본인의 행적에 대해 ‘악마 같은 삶’이라고 했다. 그러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몇명의 운영자가 아니라 그 곳에 입장한 26만여 명이 함께 만든 것이다. 26만여 명의 회원을 양산해낸 조건은 여성혐오를 정당화하며 강간문화를 유지해온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

 

하나. 가해자의 말은 궁금하지 않다, 구조적 접근으로 해결방안에 주목하는 언론보도를 하라

SBS는 경찰신상정보공개심위의원의 최종 결정 전 23일 조씨의 신상을 단독으로 공개하였다. 이후 언론은 ‘조씨, 평소 독단적’ ‘휴대폰, 여성 사진이 많이 떠 있는 것’ ‘소름 돋는’ ‘잔혹한’ ‘악질’ ‘충격적 이중생활’과 같은 표현을 담은 제목과 인터뷰를 실어 기사를 쏟아냈다. 25일 ‘악마같은 삶’이라고 자청한 가해자 조씨의 발언은 성폭력 가해자를 ‘악마’, ‘괴물’, ‘짐승’, ‘사이코패스’로 표현해 온 성폭력 언론보도 관행의 결과이기도하다. 가해자가 괴물로 표현될수록 일상적인 성폭력은 은폐된다. 언론은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것을 중단하고 선정적이거나 속보 경쟁의 과열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성폭력에 대해 지속적이고 비중 있는 보도, 구조적 접근을 통해 사회적 대책 마련에 주목하는 보도를 해야한다.

 

하나. 엄정한 수사와 정확하고 강력한 처벌을 위한 법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

성착취 목적의 텔레그램 운영자 및 회원들에 대해서는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국한하지 않고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시급하다. 메신저와 sns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성착취에 대해 면밀한 수사가 필요한 상황에도 의지없는 경찰력, 솜방망이 구형과 선고를 보아온 것이 소라넷 이후의 현실이었다. ‘갓갓’과 ‘박사’ 등으로 불거진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경찰의 단호한 의지 표명을 환영하나, 일선 경찰에서는 여전히 사이버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들이 포착되고 있다. 검찰 또한 엄정한 수사와 구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3년 6월형을 구형하고 뒤늦게 추가기소된 운영자 ‘왓치맨’, 마찬가지 1년형을 선고하고 27일 항소심이 열릴 ‘켈리’와 같은 사례가 또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공권력의 집행은 정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국회는 이미 텔레그램 성착취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을 입법과정에서 휴지조각으로 만든 전력이 있다. 국회 및 행정기관은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법적 공백을 최소화하고 양형기준 마련 등의 과제를 신속하게 이행해야 한다.

 

 

2020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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